딱 맞는 상대와 결혼할 수 없다
tjdls4118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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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이 시대 문화 속에서 현대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딜레마를 바로잡을 방법까지도 듣게 될 것이다.
성경은 딱 맞는 짝을 만나 결혼하겠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이유를 들려준다.
목회를 하다 보니 결혼하려고, 또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고, 아니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 관계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커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그들에게서
"사랑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애정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하지 않나요?"
라는 식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다.
내 쪽의 대꾸도 늘 비슷하다.
"사랑만 그럴까요?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는 이들은 '빠른 공을 쳐내기가 이토록 힘들 줄 몰랐어!' 라고 푸념하지 않을까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위대한 작품을 쓰고 싶은 소설가라면 '그럴듯한 인물들을 만들어 내고 줄거리를 구상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우리라고는 생각 못했네!'라고 한탄하지 않을까요?"
상대방은 빤한 반응을 보인다.
"야구나 문학 작품 얘기가 아니잖아요. 이건 사랑 문제라고요.
두 사람이 천생배필이라면, 소위 소울 메이트라면 저절로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나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에 대한 기독교의 답변은 '딱 맞는 짝'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는 것이다.
듀크 대학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스탠리 하우어바스(Stanley Hauerwas) 교수는 그 점을 지적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혼과 가정을 주로 개인의 성취를 도모하기 위한,
다시 말해서 '온전해지고' 행복해지는 데 꼭 필요한 제도로 가정하는 자기실현 윤리는 부부 생활에 지극히 해롭다.
여기에는 세상 어딘가에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결혼 상대가 있어서 잘 찾아보면 기필코 만나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는 결혼의 결정적인 일면을 간과하는 윤리적 가설이다.
누구나 부적절한 요소를 가진 상대와 혼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결혼 상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다만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처음엔 확실하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변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세상만사가 대부분 그렇듯, 결흔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더 이상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법이다.
중요한 건 더불어 살게 된 낯선 상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하우어바스는 완벽하게 잘 맞는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꼬집어 지적한다.
결혼은 한 인간을 또 다른 존재와 밀접하게 묶어 주는 것이다.
결혼 관계만큼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관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누군가와 결혼하는 순간, 당사자는 물론이고 배우자 또한 엄청난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실제로 살아보기 전까지는 앞길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대가 어떤 인간으로 변모할지 알 길이 없다.
...
물론 하우어바스의 법칙을 적용하는 데는 다양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정말 같이 살기 어렵겠다 싶은 상대가 있다.
하지만 그런 부류를 제외하더라도 자신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장시간 무난하게 결혼 생활을 영위해 온 커플이라면 하우어바스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기혼자라면 누구나 해를 거듭해 가면서 결혼할 때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파트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를 가져야 한다.
바꾸고 싶지 않은 본인의 습관을 변화시켜야 할 수도 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힘겨운 여정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건강하고, 다정하며, 기쁨이 넘치는 관계에 이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들어맞는 짝과 결혼한 덕분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그런 상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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