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기도제목이 배우자를 쫓아낸다
tjdls4118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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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퍼트렸을까?
원하는 배우자 기도제목을 낱낱이 적어 기도하는 풍습을.
이런 세태는 교회 안의 올드미스들에게 제법 자연스러운 풍토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나도 이십 대 초반에 이 풍습을 따랐다. 솔직히 말하면 따르는 정도가 아니라 배우자 기도제목 정리가 거의 취미생활이었다.
내 기억에 30가지 정도의 항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그때 생각의 변화에 따라 기도제목을 넣었다 뺐다 반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미래의 낭군을 상상하며 혼자 히죽거리고 좋아하면서 리스트 배우자 기도제목 정리하기를 즐겼다.
오늘도 누군가의 성경책 안에 고이 접은 배우자 기도제목 리스트가 소망 속에 잠자고 있을 터이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풍습, 과연 이대로 좋은가 질문해보고 싶다.

수첩에 적어놓은 욕심들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주님에게 아뢴다는 차원에서 배우자 기도제목을 상세히 기록하고 기도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 내용이 집착이 되고, 리스트가 기준이 되어 사람을 고르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기도제목 리스트는 내가 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그 리스트를 모두 오케이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도 때로 어떤 사람을 만난 뒤에 "내가 기도한 내용과 너무나 달라서 그 사람은 아니야!"라는 결론을 내린다.
굳이 혼자 남아 있기를 선택하는 여인네들의 융통성 없음이 마음 아플 뿐이다.
기도제목 리스트의 내용을 보면 소망도 다양하다.
거의 공통적으 로 등장하는 '온유하고 성실한 믿음의 남자'는 기본으로 깔아줘야 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쌍꺼풀이 있다가 없어지거나, 안경을 씌웠다가 벗기기도 하고, 컴퓨터를 잘했다가 운동을 잘하기도 한다.
믿음의 집안이기도 해야 하고 선교 헌신도 해야 한다.
센스와 유머도 있어야 하고 대화도 잘 통해야 한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겸비해야 하며 또 하나님을 나보다 사랑해야 한다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아부성 항목도 꼭 하나 넣어주신다.
주님이 무슨 맞춤형 배우자 제작 소장님도 아니건만 우리는 오늘도 이런 기도를 열심히 올린다.
그리고 결혼해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한 자매가 후배들에게 "나는 배우자 기도제목을 조목조목 적었는데 하나님이 안경 스타일까지 그 사람에게 딱 맞춰주신 거야!"라고 설파한다.
그러면 후배들은 '역시 우린 열심이 부족했군. 더욱 기도에 불을 붙이리라!' 다짐하며 퇴근 하자마자 집에 가서 클렌징까지 마치고 철야 기도회로 출동한다.
특새 기간에는 이삿짐을 싸서 영아부실에 임시숙소를 마련하신다.
안경테 색깔까지 주님이 들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개인적으로야 믿음과 감사의 고백이겠지만, 안경테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고 라식수술을 하거나 렌즈를 끼면 안경을 쓰지 않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소원을 주님께 올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세세하게 장을 보듯이, 인간 레시피를 만들듯이 그렇게 배우자 기도제목을 작성하고 기도하는 문화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다.
기도제목이 하나님이 된 건 아닐까
배우자 기도의 폐단은 이렇다.
일단 너무 열심히 기도만 한다.
때로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려는 열심보다 기도하는 것에 더욱 집착한다.
기도할수록 당신의 마음속에는 기도제목이 굳건한 기준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상상 속의 그가 맞춤형 인간으로 드라마틱하게 당신 앞에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막상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알아가고 경험하며 갈등하고 맞추어가는 수고를 하려 하기보다 머릿속에 입력된 기도제목 내용에 그를 하나하나 대입시켜 나간다.
그가 정말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건만, 그가 손이 크고 가디건이 잘 어울리며 운동을 잘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점수는 올라간다.
반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수가 적고, 선교 헌신자가 아니며, 부모님이 교회를 안 다니시기 때문에 점수는 턱없이 낮아진다.
자신이 가진 기도제목의 내용들 때문에 정작 남자를 선택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실수가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자매들에게는 배우자 기도제목 리스트가 자신에게 덫이 되어간다.
더욱이 그녀들은 고집까지 세다.
이제 기도제목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중요한 것 한 가지만을 보라고 해도 앞에서는 동의하는 듯하다가 돌아서면 다시 기도제목을 부여잡는다.
안경이 잘 어울려 지적으로 보이는 건 결혼생활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운동을 잘하는 것, 영어를 잘하는 것,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은 편리하지만 결혼생활 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비진리적이고 진정한 가치가 없는 항목들은 이제 그만 삭제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원하는 30가지 항목을 그가 다 가졌다 하더라도 그는 당신의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없고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리스트가 그 사람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줄줄이 늘어놓은 기도제목 항목을 넘어 한 인간과의 인격적인 하나됨과 부딪침에서 진행된다.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사람은 없을 뿐더러 당신도 누군가의 로망을 이루어줄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명심하라.
당신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그 누군가도 당신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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