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둘러싼 잘못된 신념들
tjdls4118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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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들 사이에 만연한 다음과 같은 신념에서 경제적 요인을 볼 수 있다.
결혼하려면 먼저 좋은 직장에 취직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배우자 쪽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배후에는 결혼 생활은 자원을 축낼뿐더러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 더더욱 그렇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고정 수입이 보장돼 있어야 하고. 통장 잔고도 충분해야 하며, 어쩌면 투자 포트폴리오까지 혼전에 다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세간의 통념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현실의 통계와 어긋나고 전통적 결혼관과도 어긋난다.
전통적으로 인간이 결혼하는 이유는 경제적으로 기반을 잡고 안정되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였다.
결혼하면 특유의 경제적 이점이 따라온다. 결혼한 사람이 싱글보다 돈을 훨씬 많이 저축 한다고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다. 친구 사이보다 부부 사이가 상대방이 절약하게끔 서로 더 크게 독려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부는 삶에 시련이 닥칠 때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므로 몸도 마음도 싱글에 비해 더 건강할 수 있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또 다른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표현적 개인주의"를 지적한다.
사회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면서 대중화된 이 말은 점점 확산되는 하나의 문화 동향을 가리킨다.
서구 전통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확립했다.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나아가 하나님의 우주 안에서 내게 주어진 자리가 곧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비로소 가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람들은 자기 내면으로 그 방향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나 생각이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려면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과 감정을 찾아내서 표출해야 한다.
먼저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한 다음에야 관계 속에 들어갈 수 있는데, 단, 내 기준의 나를 상대 쪽에서 받아들이는 한에서만 그렇다.
우리 문화는 무수한 방식으로 이런 현대적 관점의 정체성을 우리 안에 불어넣는다.
2016 년에 개봉한 미국 기준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보면 폴리네시아 어느 섬의 추장이 딸 모아나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모아나는 섬의 차기 지도자이니 앞으로 많은 전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아나는 모험을 찾아 바다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런 모아나에게 할머니는 친근한 노래 형식을 빌려, 모아나의 "참 자아"는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이 잠재한 갈망을 표출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손녀에게 "마음속의 목소리"가 갈망을 따르라고 한다면 그 내면의 소리가 바로 너란다"라고 말해 준다.
텔레비전, 영화, 광고, 교실, 책, SNS, 일상 대화 등 온 사방에서 이 같은 메시지가 우리를 공격해 온다. 그러다 이제는 재론의 여지조차 없어졌다. 은근슬쩍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인 양 단정된 것이다.
이렇게 정립된 현대식 자아는 그동안 결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우리는 고유의 자아 정체성을 스스로 정립하기 전에는 결혼을 생각해 볼 마음조차 없다. 내가 누구인지 직접 다 정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를 자신에게 유익한 선에서 한시적으로만 맺으려 할 뿐 영속적 구속력을 띠는 관계는 원치 않는다.
이렇게 영속성 탈피에 기준을 두면 결혼, 특히나 자녀 양육은 애물단지로 변한다. 결혼한 상태를 끝내기란 어려울뿐더러 자녀와 연을 끊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 때문에 당신의 "참자아"를 표현할 수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많은 현대인이 자신은 달라질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자신이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배우자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기를 바라고, 그런 배우자를 만났다는 결단이 설 때에만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대신 자신의 내면을 바라봐야만 자아를 발견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서로 모순되는 깊은 갈망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두려움과 분노곁에 희망과 포부도 공존한다.
우리는 이런 모순되는 갈망 가운데 '진짜 내가 아닌' 부분을 정해서 골라내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 나의 일부라면 어찌할 것인가?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어떻게 가르는가?
답은 우리가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 집단을 우러르고 존중하게 되어 그들의 관점으로 내 마음의 각종 충동을 체질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간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내면을 보아서만 아니라 여러 중요한 관계와 내러티브를 통해 확립 된다.
자신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자기 내면만 보아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통적 결혼관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지혜로웠다.
당시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깊이 있게 빚어지고 다듬어질 것을 직관으로 알았다.
정체성이란 일상에서 우리 가까이 있는 중요한 타인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확립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제니퍼 B. 로즈의 말처럼 "과거에는 사람들이 선뜻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 차차 그 의미를 배워 갔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데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과 결혼한 뒤에 둘이 함께 알아 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요약하자면 오늘날 결혼율이 감소하는 이유는 결혼에 관한 두 가지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다. 바로 결혼이 재정을 고갈시킨다는 것과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을 실현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팀 켈러, 캐시켈러의 '결혼에 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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