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부부
tjdls4118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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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더없이 아름다운 신부를 본 적이 있는가?
주님은 그분의 신부를 바로 이런 식으로 보신다.
예수님은 그분의 신부를 흠 없는 순백의 존재로 보신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분의 신부를 기뻐하신다.
그분처럼 결혼의 기쁨은 피로연이 끝나고 신혼초가 지난 뒤에도 계속되어야 한다.
부부는 예수님을 죄인에게 보내 결혼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마음에 품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로맨틱한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성부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점에서 사명적인 사랑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와 신부의 결혼은 성부 하나님이 예정하고 계획하고 맺으신 언약이다.
이 결혼은 하나님의 역사다.
마찬가지로, 부부의 사랑도 오래 가려면 매년이 아니라 매일 같이 시들어가는 감정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들에서 비롯해야 한다.
언약의 결혼은 하나님의 역사다.
아가서로 돌아가 3장 6절을 보라.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이 커플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짝 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축하 하고 있다.
여기서 광야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가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에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구름 기둥을 통해서다 (출 13:21-2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에서 구해내 자유로 이끄신 것처럼 솔로몬과 그의 신부도 하나님의 이끄심에 따라 자기의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언약의 연합이라는 자유의 땅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 시공간 안에서 역사하시며 만사를 온전히 다스리신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각 사람을 위한 '천생배필'이 있다는 개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내가 볼 때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소울메이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세상적인 개념은 전혀 신빙성이 있다.
사실, 나는 이것이 언약과 은혜에 반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상대방이 배우자로 적합한지 고려하기보다는 조사하고 심지어 심문하게 될 수도 있다.
신실한 배우자를 찾는 과정이 나를 '완전하게 해 줄' 사람을 찾기 위한 일종의 오디션으로 변질될 수 있다.
어떤가? 교만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가?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 모든 남자 혹은 모든 여자를 철저히 조사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가!
그 어떤 이성도 당신을 완전하게 해 줄 수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을 배우자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마라.
설령 당신만의 천생배필이 있다 하더라도, 만약 온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천생배필이 아닌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면 마치 나비효과처럼 전체 시스템이 흐트러져 당신도 천생배필을 만날 수 없다.
그러니 천생배필을 찾는 일을 그만두라.
천생배필을 찾느니 전설의 유니콘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만사를 온전히 다스리신다.
나는 하나님이 시공간 속에서 역사하신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내가 그분의 역사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
굳이 천생배필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 천생배필은 바로 지금의 아내다.
나와 결혼에 골인한 사람이 바로 내 천생배필이다.
지금 나와 아내는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
우리는 여러 하객 앞에서 서로에게 결혼 서약을 했다. 하나님이 시공간 속에서 만사를 주관하신 덕분에 우리는 모든 갈등을 뚫고 결혼에 골인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혼의 언약을 맺었다면 상대방을 '천생배필로 여겨야한다.
천생배필이란 개념은 결혼생활 속에서 은혜의 여지를 없애고 우리와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저 사람이 정말로 천생배필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특히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그런 의심이 수시로 밀려온다.
이기심에 빠질 때, 정욕에 넘어갈 때, 단순히 권태나 짜증을 느낄 때, 그럴 때 우리는 배우자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지 않고, 엉뚱한 사람과 결혼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은 결혼을 모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많은 결혼식이 예수님의 이러한 경고로 마무리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9).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 이 형식적으로 이 구절을 사용하지만 이 구절은 결혼의 깊은 영적 현실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두 사람을 결혼하게 해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하나님의 역사로 보지 않는 것은 결혼에 대한 모독이다.
그래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짝으로 맺어주셨다는 사실을 축하하면서 결혼식의 포문을 열었다.
향기나는 연기라는 표현은 결국 이런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 두 사람을 맺어 주기 위해 행하신 일을 보라! 우리가 어떤 난관을 뚫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보라!"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하나님이 그들을 그 순간까지 이끌기 위해 이루신 모든 역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매트 챈들러 '결혼, 하고 싶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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